♨️에리카팕의 중구난방♨️ 안녕하세요! 슨생님~
에리카팕입니다!
긴 팔을 입는 계절이 왔으니
중구냉방에서 다시 따뜻하게 돌아온
♨️ Central Heating 중구난방입니다.
추석 연휴가 끼어 9월이 반 이상 지났지만
9월에 전할 중구난방의 테마는
<프랜 리보위츠처럼> 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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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도 존경해 마지않는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님이 질문하고,
프랜 리보위츠의 대답으로 채운
제목을 패러디한 테마인데요.
오늘 중구난방 서른세 번째 레터에는
이 테마를 선정한 비기닝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요로코롬 소식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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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지성인
"자기는 뭐가 되고 싶어?"
스물세 살에 사귀었던 남자 친구가 던진 질문이다. 뭐가 먹고 싶어도 아니고 뭐가 되고 싶냐니. 남자 친구는 군대에서 막 제대해 복학한 2학년이었고 나는 졸업을 앞둔 4학년이었다. 꿈, 장래희망 같은 먼 미래의 모습을 물어보려는 뉘앙스라기보다 아마 현실적인 진로를 걱정해 물었던 질문이었을게다. 토익 학원에서 만난 누나지만 어쩐지 회사라는 곳은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이 누나는 도대체 뭐가 될까 싶었겠지. 저 갈길이 더 멀면서.
"나? 이 시대의 지성인."
딱 저렇게 대답했다. 어떤 귀감을 염두에 둔 대답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이 시대의 지성인이고 싶었다. 뭐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무식한 사람만은 아니고 싶었던 것 같다. 교양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아마 한창 대학에 다니던 시기라 지식인과 지성인 뽕에 취해있었던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몇 년이 보태어지며 나의 좌우명은 "교양, 상식, 양심"에 이렀고 몇 년째 카톡 프로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취업에 별 생각이 없었던 이유는 동대학원 진학을 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학부에서 전공하던 이탈리아어를 꽤 좋아하기도 했고, 부전공이었던 인지언어학에 열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남자 친구와 사회에 나가는 시기를 얼추 맞추고 싶었다. 대학원 2년을 다니면 남자친구도 4학년이 될 테니까. 학부와 같은 전공의 동대학원을 진학하면 조교로 일하며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서 경제적으로도 무리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민과 결심이 무색하게 대학원 입학이 확정되고 얼마 안 되어 그 친구와 헤어지게 됐다. 그러니까 남자한테 인생을 맞춰 뭔가를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지 내 나이 스물넷에 깨달았다. 모두에게 연애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한테 연애라는 것은 인생의 발전을 저해하면 저해했지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도. 그래도 이별은 퍽 도움이 됐다. 보란 듯이 잘 되리라 같은 에일리 노래같은 생각과 더불어 "나? 이 시대의 지성인." 이라고 새침하고 앙큼하게 했던 대답의 기억이 좌우명이 되어 호랑이 거죽처럼 남은 것이다.
그때만 해도 내가 뱉은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는 표현 안에 어떤 형상이 있는 것인지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았는데 십년이 지난 근래에 되어서야 그 모델이 되는 사람을 발견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도시인처럼>의 주인공 프랜 리보위츠가 그 모델이다. 6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허니제이와 리헤이가 배틀에서 맞붙었을 때가 떠올랐다. 립제이가 말했지. "언니! 내가 보고싶었던 거 이거잖아. 내가 원했던 거. 이거."
"언니! 내가 되고 싶었던거 이거잖아. 내가 원했던 거.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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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Humorist 작가이자 유머리스트라니. 내가 원했던 게 이거였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 시대의 지성인은 이렇게 설명되는 사람, 이런 사람이었다. 나는 저 사진을 너무 좋아하지만 당연히 저 한 장의 사진으로는 프랜 리보위츠를 다 설명할 수 없다. 프랜 리보위츠의 저서 저자 소개에서는 이렇게 그를 소개한다.
"여성, 레즈비언, 유대인, 뉴요커, 비평가, 에세이스트. 1950년 뉴저지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퇴학 후, 뉴욕주 포킵시에서 잠시 이모와 함께 살다 1969년 뉴욕시로 이주했다. 대학생 과제 대필, 청소부, 개인 기사, 택시 운전사, 포르노 작가, 칼럼니스트 등 여러 일을 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앤디 워홀이 창간한 잡지 <인터뷰>와 <마드무아젤>에 발표한 글을 묶어 <대도시 생활>(1978)을 펴냈으며 이 책으로 유명해져 텔레비전 방송에도 출연했다. (중략)..."
사실 이 소개로도 부족하다.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한 이 말도 유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날 증오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날 예찬해요. 양쪽 모두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죠.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냉소의 여왕인 동시에 통쾌한 바람이 분다. 누구 Power냉방 버튼 누르신 분? 7편에 이르는 다큐 시리즈를 모두 보면 그녀는 친절하지 않다. 불편한 것도 많고, 참아내지 못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녀 앞에 앉은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은 오히려 박장대소한다.
1950년생인 그녀에게서 이 시대에서 추구해야 할 다양성이 어떻게 빛나야 하는지 보았다. 다양성 존중에는 이해와 수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 다양성의 한 부분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수용하고, 맞추고, 순응하기만 했던 나는 사실 속으로 불편해하고, 뒤에서는 험담을 했다. 남자 친구의 졸업에 맞춰 내 삶을 설계했던 무식하고 무지했던 순간은 말해 뭐할까. 남의 삶에 순응하며 "이 시대의 지성인" 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내 속에는 프랜 리보위츠가 자라고 있었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나는 신랄해지기로 했다. 적어도 9월에는.
- 다음 주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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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스테이크와 곁들이기 좋은 허브들. 마트 허브코너에 15g 씩 소분되어 2000-3000원에 파는 값 비싼 채소의 나열같아 보이지만 이것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세번째 앨범 제목이자, 해당 앨범의 수록곡 <Scarborough Fair> 의 후렴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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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 리보위츠의 글들을 모아 출간된 책, <나, 프랜 리보위츠> 중 <사운드 오브 뮤직 : 작작해라> 글에 거론된 음악이라 화두로 올려봤습니다. 미국의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지만, 영국 전통 민요예요. 노래의 제목인 스카버러 시장은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45일간 열리는 지역 시장이라고 합니다. 이름의 카테고리만 봤을 때는 우리나라의 <화개장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도 있는 노래겠습니다. 있는 것은 다 있고요~ 없는 것은 없다는 모두모두 이웃사촌 왁자지껄한 화개장터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 노래 스카버러 페어는 연인과 헤어진 젊은 남자의 넋두리인가 싶은 노래인데요. 농담조로 그녀에게 바늘땀 없이 그의 셔츠를 꿰매거나, 그것을 말린 우물에서 씻는 등 일련의 불가능한 일을 해낸다면, 그녀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중세시대 영국남자 왤케 찌질하지.
난데없는 타이밍에 등장하는 허브들의 나열 “Parsley, sage, rosemary and thyme”은 상징적인 의미로 가득 차있다고 하는데요,
파슬리는 오늘날까지 소화에 도움이 되고, 쓴맛을 없앤다고 전해지며, 중세의 의사는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도 파악했다. 세이지는 몇천년에 달하는 내구력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로즈마리는 정절, 사랑, 추억을 나타내며, 현재에도 영국이나 다른 유럽의 국가들에게는 신부의 머리에 로즈마리의 작은 가지를 꽂는 관습이 있다. 백리향(타임)은 용기의 상징이며, 노래가 지어진 시대의 기사들은 싸우러 갈 때마다 방패에 백리향 모양을 새겼다. 노래에서의 화자는, 4종의 허브를 언급함으로써,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없애는 온화함, 서로의 벽이었던 시간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강함, 고독하게 그를 기다리는 정절,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모순된 용기를 지닌 진정한 연인, 그리고 그녀가 이 모든 것들을 해낼 때 그의 곁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바라고 있다.
라고 하는 군요. 허브로 사랑 전하기. 비밀 말하기. 요리먹구가에게 엄청 흥미로운 포인트입니다. 식재료로 말하는 사랑의 암호. 우리 이제 이렇게 말하기로 해요. I SEOUL U 처럼,
I 파슬리 U,
세이지 U,
I 로즈마리 U,
I 타임 U...
아니면 슨생님도 좋아하는 식재료에 상징성을 담아 가족과 친구, 연인지간에 암호로 써보는 것도 재밌겠습니다.
🧄 난 널 마늘 해.
🍅 난 널 토마토 해.
🍝 난 널 참토레루케 해.... (사랑 치사량 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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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재생되는 버전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버젼이지만, 켈틱 우먼 버젼도 신성한 매력으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띄워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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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예비 국민 사위이자, 김연아 선수의 예비 남편 고우림 씨가 속한 포레스텔라 버전의 Scarborough Fair 를 띄우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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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 오랜만에 후끈하게 찾아 온 중구난방은 어떠셨나요? 프랜 레보위츠를 완전히 체화하지는 않았지만 다음주는 조금 더 빙의하여 이야기들을 던져볼까 합니다. 다음주도 기대 많이 해주시고요~
슨생님의 다정한 응원은 central heating 중구난방의 아주 강력한 연료가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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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쳐 및 인스타 공유는 정말 환영입니다. 널리 널리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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