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리카팕의 중구냉방 🥶
안녕하세요! 슨생님!
에리카팕입니다!
제목에서 느끼셨나요?
저는 지금 공항입니다.
라고 적고 싶지만 어제의 일이 되었군요.
출근/퇴근 반복되는 루틴한 일상은 없어도 일탈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별안간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갈 곳도 없으면서요.
오늘은 그런 일탈의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쉽게도,
9월 1일에 보내드리는 중구냉방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중구냉방이지 싶습니다.
central heating 이라는 이름 대신
central chilling ~ 이라는 이름을 붙였더니
완죤 해이해져버렸지 뭐예요...
날씨가 선선해졌으니 이제 다시 따끈하게
불을 짚여야겠습니다.
그래숴!!!!
그 안에는 요로코롬 소식을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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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으로 떠난 여자
🅐 엄마, 나 잡지 나왔어! - 어라운드
✈️ Deviation Playli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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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새로운 맞춤 영상을 보기 위해 화면을 당겨 새로고침을 해대는 손가락을 보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새로고침이 필요한 건 맞춤 영상이 아니라 커피를 한 대접이나 들이켜 놓고 해야할 일은 못하고 유튜브나 보는 나새끼였다. 각성에는 카페인보다 스스로 느끼는 한심함이 직효다. 사람이 상상력을 동반하면 앉은 자리에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내기도 하지만 내적인 변화가 절실할 때는 물리적인 이동을 동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공항이라도 가야겠어."
새벽 4시에 머릿 속에 쳐들어 온 문장에 별안간 손님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집 안을 치우기 시작했다.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을 치우고, 현관에 쌓여 있는 재활용품들을 분리수거 하고, 설거지를 하고, 개수대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털어 봉지에 담았다. 어쩌면 오랫동안 이 집에 다시 오지 않을 사람처럼, 멀리 여행을 떠나더라도 이 집에 별 탈이 없길 바라며 창문까지 단단히 잠갔다. 샤워를 하고 살짝 화장까지 얹은 나는 장거리 비행에도 문제 없을 편안한 옷들을 골라 입었다. 가방에는 노트북, 충전기, 카드, 신분증, 선글라스를 챙겼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전자렌지 옆에 끼워 놓았던 여권도 챙겼다. 유효기간이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도 했다. 여행용 치약 칫솔도 챙겼다. 혹시 모르니까 마스크 팩도 냉장고에서 꺼내 가방에 넣었다.
공항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에 집 꼬라지도 내 꼬라지도 전혀 달라져 있었다. 나는 꽁꽁 여민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들고 현관을 나섰다. "이거 마시면 나랑 사귀는 거다." 라는 정우성의 대사처럼 "이거 버리면 진짜 다 버리는 거다." 라는 생각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마시겠다는 게 아니라... 아무튼 새로운 정신머리를 장착하고 금의환향 할 사람이 되어 다시 이 현관문을 열리라 결의에 찬 마음으로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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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철도를 타도 되었지만 왜인지 꼭 리무진이 타고 싶었다. 코로나 이후로 공항리무진 배차간격이 미쳤는데, 우리 동네에서 운영하던 리무진 배차간격은 280분이었다. 가장 빨리 리무진을 탈 수 있는 삼성역으로 갔다. 정류장에 앉아 기다리는데 일본인 남자 두 명이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왔다. "아직 자유여행은 안 될 텐데. 뭔가 비지니스로 온 모양이네. 코엑스 앞이니까 무역하러 왔나?" 행색으로부터 그네들의 한국에서의 일정을 상상했다. 여행객의 사정을 상상하는 것은 여행의 일부다. 삼성역에서부터 이 여행은 시작했다.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도착했다. 공항에 왔으니 비행기를 봐야지. 공항에서 오랫동안 일한 작은언니한테 문자를 했다. "언니 1공항에서 비행기 잘 보이는 곳 어디지?" 언니한테 AI같은 답장이 왔다. "빚은" "4층" 간결하고 유익했다. 요즘 AI 톡비서들은 인간 흉내내느라 사족이 참 긴데 진짜 인간들은 간결한 소통을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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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들을 구경하니 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하늘에서 볼 때랑 다르게 이것 참 거대한 물건이다. 어떻게 뜨는거지. 그러니까 나는 다른 나라에 가고 싶은 마음은 분명 아니었다. 비행기는 이제 봤으니 사람들을 구경하기로 한다. 공항 풍경이 잘 보이는 까페로 갔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노숙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얼굴은 꼭 무언가로 신문으로 가리던가 구석에 파묻었다. 층고가 높고, 넓다 못해 거대한 건물과는 달리 가능한 제 몸을 쪼그리고 자고 있는 모습이 대조되어 그 불편함이 더 잘 보였다. 눈은 노숙하는 여행객에 있었지만 내 귀는 옆 테이블 커플에게 있었다. 베트남어인지 태국어인지 모르겠지만 잘 모르겠는 동남아시아의 언어로 사랑을 속삭였다. 한 명은 이 땅에 남고, 다른 한 명이 떠나는 모양이었는데 어느 쪽이 떠나는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남자는 여자의 손에 연신 입을 맞추었고 여자는 꺄르르 행복해했다. 통곡 없이도 애절한 이별의 풍경을 뒤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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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배터리 충전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내가 여기로 찾아 왔듯 온갖 에피소드들이 찾아왔다. 아마도 아들이 해외로 유학을 가서 부모님이 배웅을 나온 것으로 보이는 가족이었는데, 어머니로 보이는 분이 내 옆에 털썩 앉았고 뒤이어 아버지로 보이는 키가 작은 아저씨가 "앉자자자자자~" 소리를 내며 앉았다. 앙증맞은 몸집과 의태어같은 의성어가 어울려 포켓몬 같다 생각했다. 포켓몬 내외는 시덥잖은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어머니는 연신 새침하게 짧게 대답하다가 별안간 거창하게 트림을 했다. 여태 들려주셨던 새침한 목소리와는 소리의 결이 달라 나는 화들짝 놀랐는데 정작 가족 중 누구 하나 놀라지 않았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었다. 놀라울 것 없는 사이. 무릎으로 양 손을 짚고 바닥에 닿지 않는 발을 나풀거리던 아저씨가 "커피 사주랴?" 라며 다리를 튕겨 자리에 섰고, "커피는 무슨 커피야~!" "아빠가 아들한테 커피 하나 못사주냐?" 티격태격하며 자리를 떠났다. 포켓몬 가족이 트림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자리로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들이 앉았다. 한 친구가 유학을 가서 친구들이 배웅을 나온 모양이었다. "선물 열어봤어?" 배웅 나온 친구가 물었다. "아니, 코 끝이 찡해져서 못 보겠어. 눈물 날 것 같애." 귀여운 한탄에 친구들이 꺄르르 웃었다. 어서 열어보라는 친구들의 아성에 못이겨 펼친 선물상자 안에는 머그컵, 젤리, 과자 같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1년 뒤에 돌아올건데~(모 이런걸 다~) " 하면서 친구들을 바라보더니 눈물을 터뜨렸다. "야 ~ 왜 울어~" 라고 위로하니 눈물을 보인 것이 민망했는지, "예뿌다~ 아이디어 좋다 이거~" 하면서 말을 돌리려고 했다. 친구들은 "유학생 선물 검색해서 찾았어." 라고 대답했다. 이 시대의 진심은 검색창을 한 번은 거치게 되어있구나. "야~ 감동이야~ 뭐라도 마셔. 내가 커피 사줄게 가자." 하며 그들 일행도 자리를 떠났다.
공통적으로 누군가는 항상 커피를 권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떠나는 쪽은 더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멋지고 말쑥한 쪽이 분명 이 땅에 남는 쪽이었다. 공항까지만 오는 사람들은 멋졌고, 비행기를 타는 쪽은 편안해야 했다. 그러니까 동남아시아의 언어로 애절하게 이별하던 커플도 여자가 이 땅에 남는 쪽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의 아니게 연인지간, 가족지간, 친구지간의 이별풍경을 차례로 구경했다. 나는 나와의 이별을 하느라 편안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비행기는 타지 않았다. 암수가 한 몸에 있는 자웅동체마냥.
출국장에 있다가 한 층 내려가 입국장으로 갔다. 이제는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돌아온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공항철도를 타기로 했다. 서울역까지 한 시간이면 가는 직행 열차를 탔는데 대부분 외국인들이었다. 설렘으로 들뜬 외국어들이 와글와글 들려왔다. 덩달아 나도 한국 여행을 시작하는 설렘이 전염되기가 무섭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복잡한 서울의 지하철. 서울역에서 4호선으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가서 5호선을 갈아타고 다시 8호선으로 갈아타서 집에 왔다. 시내버스, 공항리무진, 공항철도, 온갖 색깔의 지하철까지. 비행기만 안 탔지 여행자라면 체험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대중교통을 체험해보니 당분간 여행같은 것은 아무래도 안 가도 괜찮지 싶었다.
금의환향하는 사람인지, 시간을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되었건 나는 깔끔해진 집으로 돌아와 시차적응을 하는 사람처럼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깬 나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그것은 9월에 아실 수 있으니 9월에도 구독해주세요.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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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정으로 내용을 확장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과는 달리 오프라인에서는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함에 따른 비용이 발생합니다. 서울 고시원 월 55만원... 같은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이 땅에서 자리 하나 차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다들 아실 거예요.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함께 한 아날로그 매체 인터뷰가 정말 귀하게 느껴지고 자랑스러운데요, 그래서 자랑합니다! 엄마! 나 잡지 나왔어!
피플, 플레이스, 브랜드를 기반으로 주변의 이야기를 다정하고도 세련되게 전하는 격월간 매거진 《AROUND》 에서 친히 그 귀한 자리를 열 페이지나 내어주셨습니다. 천재 에디터, 천재 포토그래퍼 선생님들과 함께 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해서 기가 막힌 사진도 덤으로 얻었고요.
이번에 제가 한 자리 차지한 어라운드 85호에서는 #디저트 가 주제였어요. 제가 손님상에 잘 내어드리는 디저트, 제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디저트, 어린 시절 좋아하던 디저트, PMS 시기가 되면 꼭 생각나는 디저트까지 '에리카팕의 디저트'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몽땅 털어 놓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니 침이 나오네요. 츄륩.
에디터님이 <영혼을 살찌우려면> 이라는 제목을 달아주셨느데, 에리카팕의 영혼을 살찌운 디저트들이 궁금하신 분들은 어라운드 홈페이지를 LOOK AROUND 해봐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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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포토그래퍼 해란 선생님이 찍어주신 기가 멕힌 사진...
출처 : 《AROUND》 Vol.85Editor 이주연Photo 해란 @hae_r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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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공항으로 가는 길에 꾸리고 들었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저 지금 아주 야심차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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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소개하는 Yuksek (육섹) 이라는 아티스트는 저스티스, 다프트펑크와 함께 프랑스 3대 일렉트로닉 뮤지션인데요, 뭔가 프랑스어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름 Yuksek은 터키어 아니 튀르키예어로 '높다' 는 뜻이라고 해요. 대체로 시끄러운 EDM, 클럽 음악을 만드는 DJ이자 가수이지만 Off the wall 만큼은 드라이브할 때 듣기 좋은 팝이라 예전부터 참 좋아하던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자주 듣던 노래도 가사를 다시 보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처럼 평소에는 가볍게 듣던 이 노래의 가사가 별안간 저한테 직언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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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think your life must try to find another way.
- 나는 당신의 삶이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공:파파고)
무수하게 반복되는 이 가사가 저한테 하는 소리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공항으로 가는 길에 꾸린 플레이리스트 가장 첫 곡으로 선정해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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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의 노래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김윤아 언니의 사랑스럽고도 시원시원한 가창력을 비롯해 정말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마음을 후벼파는 시같은 가사 때문이기도 해요. 저는 자우림의 노래 중에 <팬이야> 를 정말 좋아합니다. 2002년에 나온 이 노래 덕분에 제 또래 세대들은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며 분명 자존감 형성에 도움 받았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중2병에 이 노래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팬이야>의 가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좋지 않은 부분이 없지만 그 중에서도 1절과 2절에 각각 대구를 이루는 이 부분을 참 좋아해요.
특별할 것 없는 나에게도 마법같은 사건이 필요해
내보일 것 하나 없는 나의 인생에도 용기는 필요해
마법같은 사건이 필요해서 신새벽에 공항으로 떠날 용기를 내 본 어느 새벽, 공항 리무진을 기다리며 꾸려본 플레이 리스트에는 그래서 Deviation (일탈) 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일탈을 하고 싶은 어느 날 고막과 마음을 창공으로 이륙하게 해줄 리스트가 필요하거든 들어보아 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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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냉방 오늘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
날씨가 쌀쌀해짐에 따라 다음주부터 이 레터는 다시 중구난방으로 돌아갑니다. chilling 이라는 이름 덕분에 조금 해이하게 운영했던 중구냉방도 다시 열기를 찾아 불태워보겠습니다. 🔥 그간의 허술했던 운영은 여름 방학이었다고 생각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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