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리카팕 공중파 진출 건
6월 15일 밤 11시 10분에 방영된 [요즘 것들이 수상해] 프로그램 혹시 보셨나요? 제가 나왔습니다! "엄마 나 테레비 나왔어!" 라고 나이브하고 상큼하게 인스타그램에 공지할 생각을 3월부터 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실까모르겠어요. 방영은 6월이었지만, 첫 섭외 연락은 3월에 왔거든요. "2030 분들의 일상을 살펴보고 리뷰해보는 프로그램" 이라며 메세지가 왔습니다. 이때만 해도 방송에 출연 섭외라는 사실에 벅차올랐습니다. "드디어! 유퀴즈에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인가?"
작년 6월 딱 이맘 때 한 친구가 그렇게 질문한 적이 있어요. ISTJ 친구답게 퇴사 후 앞날에 대한 걱정을 담아 "퇴사하면 뭐 할거야? 뭐가 되고 싶어?" 라고 요목조목 물었습니다. "글쎄. 모르지 뭐." 라고 여유로운 척 둘러댔지만 사실 마땅히 대답할 만한 목표가 없었어요. 일단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뭐든 되지 않을까?" 하는 낙관론이 90% 정도 지배한 것 같습니다. 속된 말로 '대가리 꽃밭' 일컬어지는 ENFP로숴~ 가끔은 지독하게 계획(J)은 없고 즉흥(P) 밖에 없는 제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으나, 주어진 사실만 보기보다 (S) 전체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스스로를 편안하게 할 줄 아는 (N) 낙관론자라서, 결과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원망보다 자기확신과 낙천적인 생각이 더 크게 작용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이렇게 대답하고는 했어요. "나눈... 유퀴즈에 나올거야!" 뭘로 나올지도 모르는 이 허무맹랑한 목표를 들어준 친구들 몇몇은 "오... 가능할 것 같은데?" 라고 말해주며, 유재석과 조세호 사이에 껴서 재간부리고 있는 모습이 상상이 된다며~ 저의 실밥같은 희망을 더 두텁게 뜨개질해주었답니다.
'요리먹구가'라는 이름도 그런 맥락에서 정해졌다고 이제와서 고백을 해봐요. "나를 설명하려면 뭔가 한 마디로 정의를 해야겠어. 그래야 유퀴즈에 나오지!" 하는 전략없는 전략이었다랄까요? 결과적으로 저의 직함이 되었고, 결론적으로 에리카팕이라는 사람을 리브랜딩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리보다는 초대에 의의를 둔다는 나름의 브랜드 에센스도 세울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함바데리카는 그 의의에 더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태어난 프로젝트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성장과 질문에 대한 답을 수집하는 미디어 differ 에서도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담아주셨고, 세상이 말하는 정답 말고 나다운 삶의 레퍼런스를 기록하는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 에서도 함바데리카를 주목해주셨습니다. 덕분에 TV에도 나오게 되었다고 생각하고요. 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지만 유퀴즈에 나오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니 이차저차 많은 것들을 기획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함바데리카는 그런 의미에서 여러가지 계기와 여러가지 상황을 품고 탄생한 프로젝트라 의의가 큽니다.
이번에 방영된 [요즘 것들이 수상해] 에서도 함바데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공중파 전파를 통해 전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한 기회였어요. 4월 한 달간 매일매일 담당 작가님과 통화를 하며 저에 대해 이것 저것 이야기를 나눴고, 5월은 저희 집과 동묘, 방이시장 등에서의 촬영을 진행했고, 또 여의도 스튜디오 촬영하기 전에는 VCR영상에 들어가는 여러가지 이미지 자료들을 전달하고 공유하며 실제 방영되는 30분 남짓의 시간을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지 직접 체험했습니다.
유퀴즈에 한 발짝 다가가는 줄로만 알았던 방송출연에 생각지 못한 논란이 생겼습니다. 5월 25일 1회 첫 방송 이후,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과 프로그램 제호, 로고, 보도자료 워딩 등의 유사성으로 [요즘 것들이 수상해] 프로그램과 표절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공교롭게도 양측과 모두 함께 작업해 본 입장으로서는 제 출연분 방영 전부터 많이 신경쓰였어요. 양측 모두의 입장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유사성에 분노하며 그동안 일군 것을 빼앗긴 기분일 요즘사의 입장도 공감이 되고, 레퍼런스 참고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각자의 위치에서 열을 다하여 준비하며 프로그램을 일궜을 방송국 측 사람들도 직접 눈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에 공식 입장이 부분적으로 이해가 갔습니다. 물론 그 대응방식에는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대규모 조직의 의사표명임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의 출연한 '출연자'입장으로서 출연 내용과는 관계없이 프로그램 표절에 관한 댓글들만 달리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제 방영분을 기다리며 그 전 1~3회 출연 영상 클립을 모두 확인해보아도 출연자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프로그램 표절 등으로 방송국 사람들을 나무라는 말들이 대부분이더라구요. 간혹 출연자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더 신경이 쓰였어요. 명확한 사실은 섭외 과정에서는 프로그램 제목이나 자세한 컨셉은 알 수 없었습니다. 촬영 당일 제호와 로고를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제 방영분 이후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심적으로는 어려운 부분이 컸습니다.
세상의 모두를 붙들고 소상하게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중구난방 구독자 분들이라면 제가 양측 모두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중간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제 마음이 조금 편해질까해서 뛰어들었지만 방송 이후 신경성 위염이 생겨 고생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매우 괜찮아요!)
우려했던 것과 달리, 방영 이후에는 정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수 많은 응원의 메시지와 함바데리카에 대한 관심을 많이 받았어요. 아마도 방송 중에 회사생활을 떠올리며 살짝 눈물짓는 장면이 있었는데 거기서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시고, 또 공감하시면서 마음을 보태주셨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장문의 글을 써서 공감하고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주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
그리고 이제는 수 많은 표절 댓글 사이에서 칭찬과 응원을 해주시는 댓글이 더 눈에 띄고 마음에 들어오는데, 어떤 작성자 이름이 낯 익어서 보니, 저희 이모부 성함이었어요. 20대 이후로는 찾아뵙지 못했었는데 방송을 보시고 유튜브를 친히 찾아 댓글을 남겨주셨을 이모부를 떠올리니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섭외 과정 부터 촬영, 방영까지 바쁘게만 진행되었기 때문에 공중파 출연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요, 이모부의 댓글, 또 간혹 확인되는 먼 친척의 댓글, 오랜만에 연락주시는 옛 인연들의 연락들을 받다보니 그제서야 좀 체감이 되었어요. 내가 테레비에 나왔구나!
하필 첫 방송 출연이 논란으로 시작해 온전히 이 상황을 누리고 기뻐할 수만은 없어서 정말 #호사다마 라는 말을 직접 체험했어요. 그래도 제가 일일이 닿지 못할 많은 분들에게 전파를 통해 저의 이야기와 소식을 알릴 수 있었다는 것 만큼은 정말 소중한 기회고 가슴 깊이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제 장래희망은 유퀴즈 나가기에요! 그런데 아마 그때는 요리먹구가 아닌 다른 희한한 일로 나가지 싶어요. (순전히 제 상상입니다. feat. 대가리 꽃밭) 그럼 그때까지 지금과 같은 많은 관심과 애정과 사랑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