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말 안 되려나 봐요. 19호 레터를 전하면서는 기쁘게 합격 소식을 전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총 세 번의 2종 보통 기능시험에 응시했고 (도로주행도 아니고) 세 번 모두 불합격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경험해보는 실패의 맛이에요. 뭐 그렇게 맛있는 맛은 아닙니다만 그 실패의 맛을 곱씹어 보려고 합니다.
서른이 넘고는 늘 우황청심환을 먹은 것처럼 어지간한 것에 잘 두근대지가 않아요. 사람이든, 시험이든 예전만큼 긴장되거나 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트리트우먼파이터 탈락 배틀을 보면서 손에 땀을 쥐기는 해도, 실제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무던해서 되려 내 자신이 놀라울 때가 있습니다.
8평이 안 되는 티니 타이니 리를 까사데리카에 살면서 간담이 서늘한 순간들은 더러 있습니다. 유리잔이나 유리병, 그릇(은 어지간하면 안 깨려고 하지만 그래도) 자주 깨먹는 편인데 그때마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 치웁니다. 복층 계단에서 넘어져도 5분 정도 아파하고 쓰러진 책들과 잡동사니들을 제자리에 돌려 놓습니다. 깨지면 치우면 되고, 다치면 나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몇 해를 살고 보니 이런 저런 사고들에 면역이 된 모양이에요. 그래서 모든 일에 담담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첫 기능 시험을 대기하면서도 떨기는 커녕 "기능이야 한 번에 붙겠지~" 라고 쉽고 간편하게 장담했습니다. 그러던 첫 번째 시험에서 안전요원의 정차 사인을 오인하고 길에 내내 멈춰있다가 "아니 그 쪽은 시험 안 볼 거에요?" 라며 혼이 났고, 급하게 핸들을 돌리다 검정색 선을 넘어 버려 실격했습니다. T자 주차까지는 가보지도 못했고요. 첫 시험은 조금 억울한 불합격이었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는 T자 주차를 하고 나오는 길에 코너링을 하다가 실선을 건드려 실격. 시험장을 나오는데 이번에는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어깨가 쳐지고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 시험에서도 불합격이라니.
두 번의 불합격을 하고는 학원에서 제공해주는 한 시간 무료 보충 수업을 들으러 갔습니다. 그 전 교육해주신 선생님과 다른 분이 배정되었어요. 그 전 선생님은 "박지윤씨!" 라고 불렀다면 이분은 "박, 지, 윤 씨?" 라고 불렀습니다.
"시험 몇 번 봤어요?"
"두 번이요."
"두 번이나 탈락하면서 뭐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억울했고, 두 번째는 수치스러웠던 기억만 있고 내가 뭘 잘 못했는 지는 떠오르지가 않았어요. 핸들을 어떻게 했더라, 뭐를 몰라서 실격했는지는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모르겠어요."
"그걸 알아야지. 고쳐주지."
만성 청심환을 먹은 것 같았던 심장이 오랜만에 떨렸습니다.
"자 봐요~"
선생님은 자주 실수하는 T자 주차의 요령과 코너링 요령 한 시간 동안 설명했고 실습하게 했습니다. 저는 핸들을 너무 마구자비로 돌린다는 문제를 그제서야 발견했어요.
세 번째 시험은 용인이 아니라 강남 시험장에서 봤습니다. 그런데 너무 오래 기다려서인지 시작부터 작은 실수가 있었습니다. 출발 할 때 켜 놓은 좌측 방향지시등을 삑- 소리가 나면 바로 꺼야하는데 바로 끄지 못해 감점이 됐습니다. 그래도 두 번의 불합격 덕분에 "실격 아니라 감점이라 다행이지" 하는 마음으로 T자 주차와 코너링은 침착하게 성공했습니다. 말 그대로 고지가 눈 앞에 있던 상황. 그런데 도착 직전 마지막 구간 20km 과속 구간에서 곧 합격선에 다다른다는 기대에 부풀어 너무 엑셀을 세게 밟아 과속으로 실격했습니다. ;; 너무 세게 달린 것이 문제였어요. 합격이라고 쓰인 바닥이 고작 10m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매번 불합격하고 돌아오는 길은 아름다운 풍경 일색이었습니다. 용인 시험장 앞에서는 벚꽃비가 휘날렸고, 강남 시험장을 나서는 길에는 맑은 날씨에 개울가에 민들레 홀씨가 날렸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아름다움이 나의 무능함을 조롱하는 것 같아 기분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냥 택시나 타고 다녀야 할까요?
마지막 문단은 제 소개로 대신합니다.
글쓴이 : 에리카팕 (33세)
22년 4월 22일 아침 9시 네 번째 운전 면허 기능 시험을 앞두고 있다. (*특이사항 : 2종 보통 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