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라노의 랜드마크, 두오모 성당 바로 맞은 편에는 리나셴떼 (La Rinasente) 라는 백화점이 있습니다. 두오모 풍경을 볼 수 있는 테라스 까페가 있어서 두오모 만큼이나 유명한 랜드마크죠. 리나셴떼라고 하면 낯설 수 있지만 한국인들에게 좀 더 익숙한 말로 하자면 "르네상스" 와 같은 뜻이에요. 르네상스가 불어라면 리나셴뗴는 이탈리아어인 거죠.
오랜만에 이탈리아어 언어학도로서의 설명충 본능을 깨워 더 자세히 설명해보자면, '태어나다' 라는 뜻의 Nascere(나셰레) 동사 앞에 '다시' 를 뜻하는 접두사 Ri- 가 붙어 Rinascere(리나셰레) : 다시 태어나다. 환생하다. 부흥하다. 소생하다. 싹트다 라는 뜻이 되고요, 현재분사형이자 명사형이 Rinascente (리나셴떼) 가 됩니다. 저는 이런 풀이의 과정을 참 좋아합니다. 언어의 옷을 살피다 보면, 그 개념이 갖고 있는 알몸에 도달하게 되니까요. 🙈 통상적으로 "르네상스" 라고 하면 문화적 부흥운동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결국 무언가 다시 태어났다는 말의 뼈대를 갖고 있습니다.
문화도 다시 태어나는 마당에 인간이라고 다시 태어날 수 없겠어요? 저는 사람도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제가 아는 어떤 여자 아이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군요. 1990년 09월 08일. 경기도 안양의 어느 병원에서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이름은 박지존 ... 일 뻔했지만 천만 다행으로 박지윤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지요. (지존이라는 이름이 지어질 뻔 했다는 것은 정말 레알 100% 실화입니다. 아직도 그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에는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그리고 2017년 05월 25일 장성한 박지존 아니 박지윤은 한 권의 독립출판물을 만들며 '에리카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고요, 몇 해 지나서는 퇴근하고 요리만 병적으로 하더니 2021년에는 '요리먹구가' 라는 자아까지 달고 또 한 번 다시 태어났습니다. 굵직한 탄생만 다루니 이정도지, 그 사이사이 "너 참 사람 됐다." 하는 순간까지 헤아리자면 골백번은 더 탄생했을 겁니다. 한 편의 영화, 한 권의 책, 한 곡의 노래, 한 줄의 문장으로도 사람은 다시 태어나기도 하니까요. 윤종신의 "환생" 의 가사 "그대를 만난 후로 난 새 사람이 됐어요. 우리 어머니 아직 몰라요." 라고 하는 것을 보면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까지 포함해야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슨생님의 르네상스는 언제였는지, 어떤 계기나 어떤 사람이 함께 했는지 궁금합니다. 👀 탄생 이후의 재탄생의 순간들을 되살피다보면, 타고 난 자질들을 넘어 지금 생이 가진 더 많은 것들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잃어버린 부분도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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