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조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입학한 지 이제 2주가 된 초등학생은 어떤 말을 꺼내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해갈까?
"너 혹시 영양제 뭐 챙겨 먹어?"
같은 질문일 리는 없겠지만 의외로
“난 노마 골드. 너는?”
“그건 너무 옛날 거 아니야? 난 홍이장군.”
“오~ 어머니가 좋은 거 챙겨 주시네~ 좋겠다 짜식.”
같은 대화가 오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루가 다르게 다운 그레이드 되는 몸뚱아리를 붙들며 사는 33세 방식의 상상력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조금씩 체감하며 산다. 말 그대로 몸 체(體) 느낄 감(感). 몸으로 감각하고 있는 중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통증이 느껴지고 매일매일 새로운 장기들이 감각된다. 이를테면, “간이 안 좋아 졌나? 왜 이정도 활동으로 피곤하지?” 라던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견갑골’의 통증이 느껴진 다든지.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자세로 자고 일어났는데 손이 저릿저릿했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어도 모자랄 판에 어제 없던 통증이 생긴 아침은 공포 그 자체다. 오늘은 또 뭐가 고장이 난 걸까. "수면... 팔 저림..." 드러누운 상태로 초록창에 검색을 해봤더니, 마그네슘을 복용할 것을 권장했다. 회사 다닐 적에 눈 밑 떨림이 심해서 사뒀다가 찬장에 넣어 놨던 마그네슘을 꺼내 먹었다. “너 다신 안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안 해도 되는 혼잣말을 하며 씁쓸함까지 목구녕에 털어 넣었다.
또 하루는 색다른 열감이 느껴졌다. 이마만 뜨거운 열감이 아니라, 온 몸의 핏방울들이 날 선 뾰족한 형태로 굴러다니는 느낌이었다. 아마 올 해 처음 겪는 몸살을 유독 생경하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이건 분명 내 인생 최초로 느껴보는 통증이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 속 신규 통증이 리스트에 하나를 추가했다. 신규 통증이 업데이트 될 수록 몸은 다운 그레이드 되가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의식이기도 했다.
문제가 되는 데이터들이 쌓였으면 솔루션이 있어야 하는 법. 영양제는 건강하고 젊을 때부터 챙겨 먹으라는 인생 선배들의 조언이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이제서야.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이미 늦었을 때일 테니까 이제라도 생각난 김에 주변에 만나는 사람마다 묻기 시작했다. “슨생님은 영양제 뭐 챙겨 드세요?” 진심으로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나도 따라 먹게. 답변은 다양했다. “유산균” “오메가3” “종합비타민” “프로폴리스”… 너무 제각각이고 다양해서 다 따라 사서 매일 챙겨 먹는다면 한 달에 영양제에만 지출해야 하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일단 집에 있는 것들을 모아보니 선물받았던 것들도 있었다. 새삼 감사했다. 이 영양제를 전해줬던 고마운 얼굴이 떠오르며, 그때 내가 선물 받은 것이 그저 한 통의 영양제가 아니라 하루의 건강이요, 안위요 면역력임을 깨달았다. 아멘. 오메가3는 총명함이요, 유산균은 살균이요, 프로폴리스는 면역력이요, 마그네슘은 순환이요, 비타민은 생기이니라. 각종 주문을 걸어 이제부터 나도 선물은 건강보조제로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건강보조제, 영양보조제에 들어가는 '보조' 라는 단어를 꺼내어 다시 뜻을 살피면, 1) 보태어 도움. 2) 주되는 것에 상대하여 거들거나 도움. 또는 그런 사람. 이라고 쓰여져 있다. 보태어 도움이 필요한 나이, 홍이장군 먹는 어린이는 어머니의 손길이 보태어 자라겠지만, 내 한 몸 홀로 책임지며 사는 갸륵한 어른의 삶은 스스로가 필요한 보조 항목을 체크하며 살아야 한다. 어떤 보조도 없이 조용하게 굴러갔던 몸 여기저기서 제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기 시작한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약국 카운터에 있는 노마 골드는 맛으로나 먹던 시절이 그립다. |